미쳐도 제대로 미쳐야 천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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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미쳐도 제대로 미쳐야 사는 모습이 ‘뽀다구’가 난다.사랑에 미쳐, 돈에 미쳐, 사람에 미쳐, 어떤 행위에 ...., 미쳐 보는 것은 매우 다양하다.그러나 잘 미쳐야 한다. 예전에는 잘 미치던 못 미치던 구별이 없었다. 잘못 미치면 정신병원이 직행이었고, 잘 미치더라도 사람들의 ‘모사’에 의하여 정신병원으로 가는 것이 허다했다.그러나, 지금은 세상에 ‘정신병원’이 되어 있는 시대라 예전과는 다르다. 정신병자가 구분이 안가는 ‘혼란의 시대’이다.그러기에 이러한 시대에는 더더욱 미쳐도 제대로 미쳐야 인간으로써 ‘천수’의 삶이 보장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병자의 ‘밥’이 된다. 아니, 마녀사냥의 먹이 감이 된다.지금 이 사회는 사랑에 미쳐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마녀사냥 사냥꾼의 표적이 된 이가 있다. 누구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법하다. 아니, 모르는 사람도 허다하다. 그러나 안다는 가정 하에서 말해본다. 사랑에 미쳐 그 미친 사랑의 당사자를 보고 자란 자식새끼란 자가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희대의 악녀’가 되어버렸으니. 참 그것에 놀아난 자나, 그 주위의 주변 인물이나 즉, 희대의 악녀나 그 주변의 악녀 새끼들은 도 잡아 강물에 빠져 죽여도 시원찮은 ‘해악’은 자라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는 시대의 명언은 진리임에 입증되었다.미쳐도 제대로 미치지 못하나? 너무도 사랑한 것이 죄라면 나라를 팔아먹어도 되는 것인가. 너무나 사랑해서 콩까풀이 씌이면, 그들이 뿌린 씨앗마저도 ‘악행’을 저지르면 용서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명분으로 저지르는 만행이다.사랑이란 명분으로 행하는 ‘악행’이다. 총 놀이를 좋아하는 미국이나, 이랍이나, 이태리나,.....총을 갖고 노는 나라라면 분명 ‘총잡이’의 ‘현상수배범이나, 킬러의 표적이 되어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게 만들었을 것이다.그러나 총을 갖고 ‘장난질 하는’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나라에서는 ‘표적’보다 ‘총질’한 사람을 우선 단죄한다. 그래서 버젓이 대역 범...

'벗어나라, 내것이라는 상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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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음 바뀌는 것은 사람 마음 바뀌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바뀌려면 희생적인 의지, 자기 자신의 비움에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변화되기가 어렵다.그 마음이 바뀌려고 하면 여러 가지 방해요소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방해요소를 극복해야 마음이 바뀌어 나간다. 그리고 그 만큼의 노력이 요구된다. 마음 바뀌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옛 사람들은 사람 마음이 바뀌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소리를 했을까? 그러나 죽지도 않고 마음을 바뀌게 하는 것이 있다면 어떨까. 당연히 실천해야 할 것이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가장 쉬우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행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따를 수 있겠는가? 인간의 마음이 순간순간 죽 끓듯 변화기에 마음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쉽지 않다. 그러나 원래 쉬운 것이 어려운법이요, 어려울수록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나아가면 그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다. 그럼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행이다. 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지혜롭게 살피면서 다스려 나가며 살게 하는 것이다. 인간사의 괴로움은 마음에서 모든 인간사의 괴로움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특히, 잘못된 마음에서 비롯한다. 그 잘못된 마음은 어리석은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을 버리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것 우리는 이것을 ‘마음 다스리기’라고 한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괴로움과 속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천당과 윤회의 순환을 거듭한다.“전도몽상” 잘못된 생각, 꿈같은 생각에 의하여 괴로움은 연속된다. 얻고자 하는 강한 생각이 만들어 내는 괴로움, 바라는 바에 대한 강한 집착, 다른 말로 표현하면인간의 ‘욕구’이다. 우리의 인생이란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이에서 행복과 불행, 천당과 지옥을 돌고 돈다. 이것을 순환이라 하며, 윤회라고 하며, 섭리라고도 한다. 반쪽자리 행복을 살고 있으면서 윤회가 계속되고 그 윤회의 고리에서 ...

진정한 친구관계가 사회의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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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 관계가 사회의 평화를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부정부패(不正腐敗)의 의미를 들추어 보자. 부정부패란 “생활이 깨끗하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는다”는 의미이다. 이 작금의 우리사회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국정이 한 국가의 수뇌가 한 여자의 치마폭에서 놀아나고,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 여자의 희생재물이 되었다. “죄 없는 자는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수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성경의 예수란 존재가 간음한 여자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할 때 그 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여인에게 돌을 던지지 못한다. 그것은 개개인 스스로가 죄 없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생각하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지금의 작태가 그렇다. 타인을 정죄하고 심판하기 이전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에 의하여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를 선출했고, 그 지도자가 한 여자에 의하여 농락당했다. 아니, 배신을 당했다. 아니, 처절하게 난도질당하며 희생재물이 되고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미쳐 광분하고 있다. 그 희생재물의 폭도가 되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자신의 기득권의 확보를 위해 미치고 있다. 미쳐도 보통 미치는 것이 아니다. 정신병원이 따로 없다. 이렇게 큰 정신병원이 어디 있는가? 미쳐 날뛰고 정신병원의 문을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 온 천지에서 시퍼런 칼날을 가지고 죽일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러한 무법천지도 따로 없을 것이다. 광란의 세계가 우리가 처한 현실이 되었다. 백성이여 깨어나라 마녀잡이의 군중이 되지 말고, 마녀잡이에 희생재물을 만들지 마라.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국가라는 인격체를 유린하는 것이니, 어떠한 대의명분으로 그것은 용서 받을 수가 없다. 그러한 자는 모두 하늘도 용서 못할 천인 공로할“악”이며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전범과 같다. 그 전쟁을 일으키는 전범은 역사가 용서하지 않는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

살아 있는 생명은 우주와 바꿀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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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생명은 우주와도 바꿀 수가 없다 사람들이 만든 사회가 사람들로 인하여 파괴되어 가고 있다. 지나가다가 자신을 쳐다본다는 이유로 칼부림이 오가는 사회, 신문 방송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건 사고의 주 메뉴가 되고 있다. 환경은 환경대로 오염되어 가고 있고 간혹 가다가 대형 사고가 일어나면 그때야 조금 경각심이 발동되다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는 둥 또다시 조용해진다. 마치 자신에게는 그러한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착각 속에서 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고는 예기지 않는다. 위험을 안고 사는 사회에서 사고와 재앙은 예고 없이 닥쳐온다. 준비된 자만이 재난을 당당하게 극복해 나갈 수가 있다. 환경이 오염되고 그로 인한 재난은 항상 우리 주변에 발톱을 하고 도사리고 있는 이때, 가장 먼저 인식해야 할 사실은 ‘생명존중’에로의 의식이다. 그 의식은 환경문제, 사회문제, 국가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즉, 생명을 경시하면 환경이 오염된다. 무작정 성장을 위해 뿌린 농약이 땅을 오염시키고,생명을 경시하다보니 괜히, 지나가는 사람이 성가시게 보인다고 칼을 휘둘러 대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람을 해하는 까닭에 폭력, 폭행, 난동, 조직적 선동은 사회, 국가 문제로 번지게 되는 것이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생명은 존중되어야 하고 존중 받아야 한다. 그것이 동물이든지, 사람이든지. 특히 ‘살아 있는 생명은 우주와도 바꿀 수’가 없다. 그것은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우주와도 같으며, 그 구조가 우주에 유행하는 행성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사람은 소우주이며, 대우주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신체 구조가 우주와 같고, 또한 미시적으로 그 수풀을 보면 ‘작은 큰 우주’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는 과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인간의 그 염색체를 조각별로 나누면 유전자는 30 억 개 쌍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25,000개의 단백질을 만들고, 안밖으로 35,600개의 또 다른 형태를 구성한다고 한다. 또한 인간의 몸 안의 ...

마음이 아름다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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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평론■      마음이 아름다우면 “개 눈에는 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은 사람이 대상을 볼 때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그렇다.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은 다양하다. 그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보는 것이 사람들의 시각이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일 것이요. 부정적으로 보면 세상이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대상을 개처럼 보니 당연하게 세상이 개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이 개판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인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님을 살해해서 유기하는 행위, 계모가 자신의 아기를 구타하여 살인을 서슴지 않는 행위, 미혼모가 유아를 아기를 가방에 넣어 강가에 유기에 살인하는 행위..., 아무리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마음을 다잡아 보아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다. 부처가 살아나도, 예수님이 살아 계셔도, 성인군자가 땅속에서 부활한다고 해도 분명 지금에 돌아가는 세상은 개판일 것이다. 개판이 도를 지나쳐서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징후이다. 말세는 말세이다 부정적으로 대상을 극단적으로 말할 때 야기하는 말이 어쩌면 엄연한 진리가 되어 버린 시대! 말세는 말세이다. 입으로 내 뱉아 죄악을 불러오는 말들이 세상의 진리가 되는 시대! 자기중심적으로 배려 없이 행하는 행위가 진실이 되어 버린 시대! 군중의 함성이, 군중의 마녀 사냥이 세상에 중심이 되려고 하는 시대! 사람의 정서는, 사람이 돌아가야 하는 본연의 고향은 세월 속에 유폐시켜 버리고 사람 존재의 가치를 상실해 버린 시대에 우리는 과연 황폐해진 우리의 가슴에 새로운 싹이 돋아나게 할 수는 있을 것인가? 사막의 땅에 오아시스를 만드는 것도 많은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매 마른 땅위에 옥토를 조성하는 일인들 그와 다를 바가 있는가? 자기중심적인 가치로 경화되어 버린 사람의 마음이 쉽게 타자 중심적이며 타자배려적인 마음으로 변...

인간다운 정말로 인간다운 사람이 생각나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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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다운 정말로 인간다운 사람이 생각나는 시절    교 사는 있지만 스승은 없고,학생은 있다지만 제자가 없다는 얘기가 사실로 통용되어 가는 사회. 학교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회초리를 들었다고, 폭행했다며 학부모가 스승을 고발하는 지금의 교단의 모습.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 “스승은 곧 부모와 같은 소중한 존재이다”.라고 말하며 학교에서 스승에게 매를 맞으면, 처벌이 아닌 훈육이며 집에 와서 부모에게 말하면 오히려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았던 시대가 엊그제 같다. 들녘에 가을빛이 출렁이고, 산 빛 단풍이 짙게 물들어오면, 삼삼오오 줄지어 자신을 즐기기 위한 여행길 떠나는 사람들은 많지만, 겨울철 하늘을 나는 날짐승인 가치를 위해 까치밥으로 감 두서너 개 정도는 남겨 두던 시골의 포근한 인심과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 세참을 먹으면서도 기어다니는 개미, 들쥐 등 미물들을 위하여 그곳이 산이었든지, 들이었든지 고수레로 던져주던 음식에 대한 온정들.  길가 초가지붕 처마를 길게 만들어서, 지나가는 과객이나, 나그네들이 비나 눈이나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게 했던 옛 선인들의 아름다운 깊은 여유로움의 인정들은 이제는 간데온데없이 찾아 볼 수가 없는 뒤안길이 되었다. 인간은 정지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다. 퇴보는 변질이며, 성숙은 발전이기에 인간의 건강성은 성숙에 있다. 남의 아픔을 짋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픔도 나의 아픔으로 여기며, 동병상연의 정도 느끼고, 배려하고 봉사하며 나아가는 인간이 성숙해 가는 존재라고 말한다면, 수행하는 생활이, 성자, 스님, 수행자가 따로 없다. 세상살이에서도 마장이 끼게 됨을 볼 때, 이 마장은 인간 성숙의 시금석이지만, 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