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라, 내것이라는 상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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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음 바뀌는 것은
사람 마음 바뀌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바뀌려면 희생적인 의지, 자기 자신의 비움에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변화되기가 어렵다.그 마음이 바뀌려고 하면 여러 가지 방해요소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방해요소를 극복해야 마음이 바뀌어 나간다. 그리고 그 만큼의 노력이 요구된다. 마음 바뀌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옛 사람들은 사람 마음이 바뀌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소리를 했을까? 그러나 죽지도 않고 마음을 바뀌게 하는 것이 있다면 어떨까. 당연히 실천해야 할 것이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가장 쉬우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행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따를 수 있겠는가? 인간의 마음이 순간순간 죽 끓듯 변화기에 마음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쉽지 않다. 그러나 원래 쉬운 것이 어려운법이요, 어려울수록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나아가면 그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다. 그럼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행이다. 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지혜롭게 살피면서 다스려 나가며 살게 하는 것이다.
인간사의 괴로움은 마음에서
모든 인간사의 괴로움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특히, 잘못된 마음에서 비롯한다. 그 잘못된 마음은 어리석은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을 버리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것 우리는 이것을 ‘마음 다스리기’라고 한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괴로움과 속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천당과 윤회의 순환을 거듭한다.“전도몽상” 잘못된 생각, 꿈같은 생각에 의하여 괴로움은 연속된다. 얻고자 하는 강한 생각이 만들어 내는 괴로움, 바라는 바에 대한 강한 집착, 다른 말로 표현하면인간의 ‘욕구’이다. 우리의 인생이란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이에서 행복과 불행, 천당과 지옥을 돌고 돈다. 이것을 순환이라 하며, 윤회라고 하며, 섭리라고도 한다. 반쪽자리 행복을 살고 있으면서 윤회가 계속되고 그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괴로움은 계속되며 마음은 바뀌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지겹도록 끊기지 않는 그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해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해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해탈로 나아가기 위한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절한 소망을 담은 기도하는 마음이다.
소원의 기도란
진실한 소원이 담겨져 있는 의지가 기도이다. 소원된 기도란, 그리고 그것이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때는 그 자체가 참수행이요, 명상이기 때문이다. 그 수행은 깊은 마음에서 일어나기에 ‘마음을 닦는 것’이다. 그 마음 닦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이며 이것은 경건성이 수반된 ‘경건한 마음’이다. 무엇인가를 내려버리고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하는 마음을 말한다. 욕심을 내려놓기에 눈은 마음의 거울처럼 청정하고 정신은 영혼까지 넘나 들 수 있는 초월성을 지닌다. 비로소 새로운 세계에로의 향해가 된다. 많은 욕심들이 화를 만들어 내었기에 얼마나 많은 괴로움이 온 몸을 지배하고 있었을까. 그러나 ‘모든 것이 나로 인하여 발생한 화(괴로움들)이었구나’ ‘모든 것이 나의 것 나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태어난 것이구나. 뉘우칠 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어두움의 동굴을 지난 난, 광명을 보며 ‘참나’를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참회’가 되는 것이다.
참회하는 것이 괴로움에서의 해방이다
참회는 지나간 허물을 뉘우치고 앞으로의 허물을 경계하며 다시는 과오를 짓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참회를 하게 되면 마음속에 뭉쳐 있던 응어리가 융해된다. 풀어진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그것이 집착으로 인하여 발생했던 죄이며 그것을 뉘우쳐서 풀어버리는 것이 죄의 소멸이 된다. 참회를 하게 되면 몸을 낮출 줄 알며 몸이 낮아지기에 마음도 덩달아 숙여진다. 참회의 근본은 마음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도 움직인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으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임을 안다. 그것은 입으로 나오는 것이 마음으로 인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참회를 하는 기도를 함으로서 기도의 수행 즉, 몸 다스림을 방해하는 망상과 잡념은 소멸한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한 참회가 회개이다. 자기만 생각했던, 자기 것으로만 생각했던,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했던 ‘전도몽상’‘집착’‘소유’가 ‘무소유’‘무집착’이 된다. 비로소 마음이 바뀌면서 새로 사는 것이다. 죽지 않고도 마음 바뀜으로서 사는 것이 이런 것이다. 이제 ‘벗어나라, 나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때 비로소 괴로움에서 해방되며 괴로움의 구속으로부터 해탈을 할 것임을 안다면. 글 | 하운 김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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