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정말로 인간다운 사람이 생각나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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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정말로 인간다운 사람이 생각나는 시절
교사는 있지만 스승은 없고,학생은 있다지만 제자가 없다는 얘기가 사실로 통용되어 가는 사회. 학교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회초리를 들었다고, 폭행했다며 학부모가 스승을 고발하는 지금의 교단의 모습.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 “스승은 곧 부모와 같은 소중한 존재이다”.라고 말하며 학교에서 스승에게 매를 맞으면, 처벌이 아닌 훈육이며 집에 와서 부모에게 말하면 오히려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았던 시대가 엊그제 같다. 들녘에 가을빛이 출렁이고, 산 빛 단풍이 짙게 물들어오면, 삼삼오오 줄지어 자신을 즐기기 위한 여행길 떠나는 사람들은 많지만, 겨울철 하늘을 나는 날짐승인 가치를 위해 까치밥으로 감 두서너 개 정도는 남겨 두던 시골의 포근한 인심과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 세참을 먹으면서도 기어다니는 개미, 들쥐 등 미물들을 위하여 그곳이 산이었든지, 들이었든지 고수레로 던져주던 음식에 대한 온정들. 길가 초가지붕 처마를 길게 만들어서, 지나가는 과객이나, 나그네들이 비나 눈이나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게 했던 옛 선인들의 아름다운 깊은 여유로움의 인정들은 이제는 간데온데없이 찾아 볼 수가 없는 뒤안길이 되었다.
인간은 정지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다. 퇴보는 변질이며, 성숙은 발전이기에 인간의 건강성은 성숙에 있다. 남의 아픔을 짋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픔도 나의 아픔으로 여기며, 동병상연의 정도 느끼고, 배려하고 봉사하며 나아가는 인간이 성숙해 가는 존재라고 말한다면, 수행하는 생활이, 성자, 스님, 수행자가 따로 없다. 세상살이에서도 마장이 끼게 됨을 볼 때, 이 마장은 인간 성숙의 시금석이지만, 빈 하늘마음을 알게 되고 사라져 가는 인정의 사람내음이 회복 된다면...,, 새삼 중국 당나라 때 한산 스님의 시를 통하여 한번쯤 성숙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움을 풍미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인간은 정지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다. 퇴보는 변질이며, 성숙은 발전이기에 인간의 건강성은 성숙에 있다. 남의 아픔을 짋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픔도 나의 아픔으로 여기며, 동병상연의 정도 느끼고, 배려하고 봉사하며 나아가는 인간이 성숙해 가는 존재라고 말한다면, 수행하는 생활이, 성자, 스님, 수행자가 따로 없다. 세상살이에서도 마장이 끼게 됨을 볼 때, 이 마장은 인간 성숙의 시금석이지만, 빈 하늘마음을 알게 되고 사라져 가는 인정의 사람내음이 회복 된다면...,, 새삼 중국 당나라 때 한산 스님의 시를 통하여 한번쯤 성숙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움을 풍미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라 하네“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라 하네“
끊임없이 선택을 하는 모순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란 군상들.
집착과 애착의 순환 사슬 속에서 스스로 에고라는 마음의 짐 덩어리를 만들고, 삶의 마지막까지 어두움의 동굴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러한 자신의 선택이 진정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것도 모른채. 또한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살다가는 나약한 중생이 되어간다. 이 시대의 최고의 악은, 이 시대의 최고의 오염의 주범은, 그리고 사람내음마저 그 자체의 인간성마저 상실하게 만드는 것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인간” 그 자체이다.
인간적이다.너무나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지 너무나 인간적이지 못하며, 이성적이다 너무나 이성적이다 보니. 항상, 합리적이어야 하고, 당위성이 부여 되어야 하고, 법이니,도덕이니, 관습을 앞세우게 된다.
칼을 좋아하며 칼로 망하고, 법 좋아 하다보면 법으로 망하고....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새삼 진실로 여겨진다. 아니, 섭리로 받아들여진다. 이제 신앙을“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작은 껍질을 벗어가는 자각의 행위”라고 했던 서구인들의 정의처럼, 이제 우리도 스스로 좀더 나은 자신을 위하여, 사람내음 사라지게 만드는 에고라는 습성을 과감하게 벗어 던져버릴 용기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하운-
집착과 애착의 순환 사슬 속에서 스스로 에고라는 마음의 짐 덩어리를 만들고, 삶의 마지막까지 어두움의 동굴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러한 자신의 선택이 진정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것도 모른채. 또한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살다가는 나약한 중생이 되어간다. 이 시대의 최고의 악은, 이 시대의 최고의 오염의 주범은, 그리고 사람내음마저 그 자체의 인간성마저 상실하게 만드는 것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인간” 그 자체이다.
인간적이다.너무나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지 너무나 인간적이지 못하며, 이성적이다 너무나 이성적이다 보니. 항상, 합리적이어야 하고, 당위성이 부여 되어야 하고, 법이니,도덕이니, 관습을 앞세우게 된다.
칼을 좋아하며 칼로 망하고, 법 좋아 하다보면 법으로 망하고....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새삼 진실로 여겨진다. 아니, 섭리로 받아들여진다. 이제 신앙을“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작은 껍질을 벗어가는 자각의 행위”라고 했던 서구인들의 정의처럼, 이제 우리도 스스로 좀더 나은 자신을 위하여, 사람내음 사라지게 만드는 에고라는 습성을 과감하게 벗어 던져버릴 용기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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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김남열 "살아 있는 생명 자연은 곧 나이다"
살아 있는 생명 자연은 곧 나이다 하운 김남열 살면서 인간이 자연 앞에서면 숙연해 지는 것은 인간 자체도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궁극에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품이다.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재앙도, 자연을 아름답게 보존되는 것도 인간인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면 인간에게 재앙을 안겨다주며, 자연을 보호하고 아끼면 지상낙원의地上樂園의 행복을 보존하게 한다. 또한,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연 속에서 자연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은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인식이 곧 지상낙원의 행복을 보존하는 것이며, 자연을 무분별하게 사용할 때 천재지변의 재앙은 닥쳐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이란 존재는 애초에 서로 도우면 살아야한다는 본질의 미덕을 안고 이 지상에 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절묘한 조합 그것은 집을 받쳐주는 건물의 중심 기둥과 같다. 서로 받쳐주지 않으면 집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과 같다. 단지 인간이란 존재가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더 오래살고 더한 행복을 누리며 호사豪奢 하고자 하는 집착과 탐욕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소중하다. 그러기에 대 자연도 살아 숨 쉬는 인간의 호흡처럼 생명이다. 그 생명은 어느 하나 없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간인들 예외일 수가 없다. 살면서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살아 있는 생명인 자연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의 고뇌를 알면서 살아야 한다. 자연인 인간이 자연만으로 그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그 진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 자연이 현시하는 깊이의 실재를 알 때 인간은 참자연인으로서 우뚝 서게 된다. 한 자연인인 인간인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써의 아름다움이 아니고 자연의 장엄함을 이해함으로써 아름다움이다. 우주의 섭리를 이해함으로서의 아름다움이다. 고로 자연 가운데서 현시하는 깊이의 실재를 읽지 못하는 자에게는 타자의 자연도 산 것이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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