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하운 김남열의 "사람의 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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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도道
하운 김남열
살아가는 도리道理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도리道理인 사람의 길이 있다. 나는 그것을 도道라고 명명해 본다. 물론 많은 도에 대한 정의가 있지만 너무나 추상적이며 구체적이지 못한 관념 덩어리 일수도 있기 때문에 실생활과 근접할 수 있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정의 내려 보고자 한다.
도는 생각을 하고, 생각을 지닌 생명 있는 모든 것에게 존재한다.
있다가도 없을 수가 있고, 있을 량이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침묵하면 옆에 있다가 인간의 교만과 이기가 생기면 수 천리를 도망가고 마는 것.
수 천 가지의 얼굴을 하고, 수많은 생명들에게 바로가고 올바로 가는 길이 무언가를 가르쳐 주며‘나는 누구인가?’끊임 없이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게도 하며,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기 때문에‘나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것.
사람이 가고자 하는 목표가 크든, 작든 언제나 그 양자의 가운데에서 공생하는 도道는 사람들 삶의 한가운데서 길라잡이가 되고 있다.
도道를 애기함에 있어서는‘동적인 현상’의 도와 보이지 않는‘정적인 현상’의정신적 도道로 나눈다.
하지만 이 둘 의 공통점은 마음에 의해서 이 둘이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전자가 사람의 의지와 집념에 따라서 달라진다면, 후자는 정신적 사유思惟에 달려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관념적이요, 추상적이요, 머리 복잡한 형이상학적이며 형이하학적 도道는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도는 현실성이 없으며, 22세기를 달려가는 현대인에게는 너무나 추상적 그림이요, 화화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의 피부에 와 닿고, 현실을 직감하면서 나를 거듭나게 만드는 도道만이 멀리 달아나는 도가 아니요, 황폐한 세상에‘나의 건강성’과‘이웃의 건강성’을 지켜주면서 맹인이 되거나 귀머거리가 되지 않고, 청명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세상을 밝혀 내 스스로를 발전하며 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현실적이며, 실제적이라는 것을 말할 때는‘이기심’의 마음은 배제된 상태이다. 그것은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도道는‘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깃든 도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가“도를 아십니까?”를 물어 올 때에는 그런 사람은 몽둥이로 패서 멀리 쫒아버려라. 그는‘도道’를 빙자하여 인간의 영혼을 착취하며 욕되게 하는 자이며, 죄罪 중에 가장 큰 죄를 범하고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도는 이미 우리의 몸속에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있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도를 애기함에 있어서, 도를 인간이 행해야 하는 가장‘큰 덕’이라 말하고 싶다.
덕德이 있는 사람은 어두운 방의 횃불을 밝혀주는 것과 같다. 그 횃불은 어두운 방을 환하게 해준다. 덕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무명無明’을 걷어낸다.
사람이 욕심을 부려서 스스로의 덕德(자기 억제 ,겸허, 너그러움)을 쌓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다. 그것은 맑은 물을 흙탕물로 만드는 것처럼, 하얀 마음의 도화지에 낙서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참된 도리’인 도를 행하지 못하니‘참된 도리’인 도를 보지를 못할 것이며,‘도(道)’란 글자는 머리(首)로 간다(走)는 뜻 글자인데, 큰 덕德(자기 억제 ,겸허, 너그러움)의 도道인 진정한 정신이‘머리로 생각하며 바로 가지 못하고’, 단지 실천이 없는 머리가 순환되어 흘러가지 못하는 이론적인 사념邪念에 머물러 버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몸 안에 들어와서 내성적 큰 에너지가 되는‘큰 덕’은 쌓이지도 않을 것이다.
큰 덕德이 도道다
인간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많은 환경적 요소와 대응하게 된다. 그것을 극복하기도 하고 극복하지 못하고 질곡에서 허덕이기도 한다.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릴 때 사람의 도리인‘도道’도 함께 매장된다.
그렇게 나락의 길로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언가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집착은 얽매임이다. 얽매여 살다가 구렁에 빠지면 헤쳐 나오기 힘들다.
사람에게 있어서‘집착’은 사망의 골짜기로 떨어지게 한다. 반면 집착에서 벗어나면‘해방의 자유’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몸을 쓰게 하는‘작은 해탈’이다. 그것에는 생각을 비우려 하나 생각이 있고, 집착을 벗어 던졌다고 생각하나 아직 흔적의 여운이 남아 있음이다. 그것은 완전한 자유, 완전한 해탈, 내가 있으나 내가 없음의‘나’로 돌아가기 위한‘큰 해탈’‘큰 덕’‘도’의 완성을 위한‘수련’이며‘마음 닦음’이다.
그래서 인간이 행해야 하는 가장‘큰 덕’인 도道는 얻고자 하면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 속에서 마음속에 들어오는 마장의 불길을 제어하지 못하면 ‘큰 덕’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 그 마장魔障의 불길이 바로 인간의 집착하는 마음이요, 그집착하고, 더없는 욕심 속에 얽매이려하면‘큰 덕’인 ‘도’는 수 천리를 달아나 버린다.
고요하고 정제된 마음과 반복되는 마음의 다스림 속에서‘큰 덕’인 도道는 생성되며 양적이며 질적으로 성장된다.
도道의 훼방꾼
그리고 현대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 큰 덕이 생성되는데 있어서 가장 큰 훼방군은 ‘부귀공명富貴功名’에로의 욕심이며 집착이다. 그 부귀공명을 탐하자말자? 그럴 때 육신肉身은 이미 죽은 미이라가 되고 만다.
부귀공명富貴功名은 꿀물과 같이 달콤하다. 한번 맛을 보면 끊기가 쉽지 않다.
부귀공명은 사람의 몸과 영혼을 가두는 감옥監獄이다.
부귀공명이란 감옥문監獄門을 부수고 뛰쳐나올 때, 사람은 비로소 신랑과 신부를 환영하듯 도道를 맞이하게 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요. 모든 현상은 마음의 그림자 이다.
보이는 허상虛像을 실상實像으로 보고, 실상을 허상으로 보는 것은 분명히 마음의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장애障礙란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뜻에 어울리지 않는‘기댐’의 약점을 믿기 때문이다. 또는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이‘기댐’이라는 의지依持처가 있으며‘에고’가 가득한 욕망은 목적을 위해‘의지처’란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에고가 배제된 것은‘욕망’이 아니다. 에고가 배제된 인간의 소망은 기도하며 염원하는 간절한 소원이며 기원이다.
또한 타인을 위한 기도이다. 타인을 위한 배려와 공경이다. 여자와 남자를 대할 때 곧은 마음으로 대하고, 나이든 남의 집 여인을 나의 어머님처럼 여기고, 나이 많은 다른 집 여인을 나의 누이로 여기며, 나이 어린 동생을 나의 동생처럼 여기는 ‘이해심’의 깊고 넓은 산과 바다와 하늘과 땅과 같은 마음이다.
초월의 마음
선에도 악에도 지우치지 말고, 선하면 더욱 선해지기를 노력해야 하며, 악한 마음에 물들지 말고 그 악한 마음이 생길라 싶으면, 그 악한 마음의 기운을 걷어내어 승화내기 위하여 자신의 장기를 도려내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더욱 정진해야 한다.
사랑한다고 하지도 말라. 사랑한다고 너무 기뻐하지도 말고, 슬프다고 너무 아파하지도 말라. 사랑하기에 더욱 사랑하지 못함에 아쉬워하고, 미워하기에 타인을 더욱 위로해 주지 못함에 못내 안타까워해라.
‘도를 행한다고 할 때’도는 행해지는 것이 아니요. 그 행함은 교만이라 할 것이요. 도를 행하지 못한다고 하지도 말라. 그 행함은 자기비하自己卑下이며, 게으름이니, 도를 행함에 소리 없이 해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그때 도는 바람처럼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초월超越의 마음을 가지도록 힘쓰자.
부귀공명이 쉽게 내 곁으로 다가오면, 마른풀에 불을 멀리 하듯 하고, 부귀공명이란 불길에 스스로 육신과 정신이 재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탐심은貪心 부귀공명의 유혹을 단번에 무 자르듯 하지 못한다.
하지만 무 자르듯 해야 한다. 그 무 자르듯 하는 것이‘초월의 마음’이다.
탐심은 사람의 마음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니 스스로 심층의 원래 고요했던 마음의 호수에 배를 띄워야 한다. 고요해지면 현상에서 느끼게 되었던 모든 색도 허상이요, 모든 행함도 허무함을 품고 있음을 느낀다. 탐심으로부터 무 자르듯 초월해야 한다. 그 때 비로소‘큰 덕’인‘도道’의 문이 열리며, 도道는 우리와 함께 할 것이며, 구태의연舊態依然(오래된 것을 당연시 여기고)하고 고루古壘(옛 성체와 같은)하면서 진부陳腐(나쁜 냄새가 넓게 퍼진)한 우리의 일상에 일대 변혁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몸의 가장 친한 절친한 이웃처럼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람의 길인 사람의 도道는 자기억제, 겸허,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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