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하운 김남열의 "신이 되어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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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이 되어 있는 사람들
하운 김남열
어느새 인간은 신이 되어버렸다. 아니, 이미 되어 있었다.
그가 동물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닌 우등한 존재로 우뚝 서려고 하고 있었다.
인간의 강한 욕망이, 강함 탐욕의 이기가 신이 되려고 하는 순간부터 그는 이미 열등한 동물과 같은 미개의 족속이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단지, 신의 형상대로 빚어진 존재라는 존엄성과 거룩함의‘마음’과‘주체’를 잃어 버렸기에 동물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동물과 동물들의 각축장을 만들어 놓고, 그 보다 낳은 존재가 되려고 욕심을 부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탐욕과 이기의 신, 권력의 신, 자연을 지배하려는 신이 되어서 모든 신 존재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아니, 자신이 자기임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스로가 신이 되려하고 사람이 얘기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하나의 또 다른 상상적 부속물로 실추시켜 버렸다.
그러나 나는 신 존재의 출발을 나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나란 존재란 보이는 자신의 형상 이외에 본질이라는 선하든 악하든 그것까지 포함한 모두를 말한다. 나란 존재를 말함에 있어서 껍데기인 형태의 자신만으로 나란 존재를 말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내가 누구며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를 말할 때 항상 나란 형태만 놓고 내가 지금 보이고 있는 그것으로 내가 지금 놓인 자리의 모습만보고 생각할 수 없으며, 그것이 자신自身이라고 말할 수가 없고 자신의 본모습임을 말할 수가 없다. 반드시 인간 본성의 존재와 인간의 본질을 제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비교하며 사는 존재이다.
비교되지 않고는 자신에 대해서 정의 내릴 수가 없으며 다른 것에 대해서도 한정하며 정의 할 수가 없다. 유類한 다른 사물을 보며 자신의 유類함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인간의 사유思惟는 다른 유類의 사유에 의해서 나我 라는 類의 사유도 결정된다. 하지만 결코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세계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영역이 많고, 인간의 정의가 틀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다른 유類가 나의 유類를 결정한다고 할 수가 없다. 단지 다른 생각에 의하여 나의 생각이 결정된다함은 다분히 상징적인 모습도 배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록 사물 안에는 차별이 없다지만 생각은 차별 의식을 만든다. 그 차별의식에 의하여 인간은 무한히 인간답기 위한 상징물을 만들어 간다.
인간이라는 실체는 그 자체 안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능성에 의하여 존재할 것이라고 여기는 많은 성스럽고 인간 발전적인 허구와 실질적인 것을 만들어 나간다.
인간답기 위한 것들, 인간답지 않기 위한 것들, 편리를 위한 것들, 편리함이 필요 없어도 만드는 것들... 그러한 가운데 탄생한 것이‘신의 권능을 지닌 사랑’이다. 그래서 신神은 사랑이며 사랑 안에서 인간은 완성 되어가며 끝없이 사랑을 갈구한다.‘신의 이름으로 사랑을!’
그래서 사랑이란 유한한 존재이면서 무한한 존재이며, 유한하고 무한한 본질이며, 무한한 가능태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사랑은 신의 형상으로도, 사람의 모습으로도, 동물의 모습으로도, 인간의 부정적인 생각도 긍정적인 생각도 모두 다 품는다.
神이 사랑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분명, 출발은 인간으로 부터이다. 아니 나我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이 신을 갈구하고 신이 되어야 함은 필연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그 필연이 영원성을 만들었으며 결코 신은 죽지 않는다. 처음도 끝도 없는 영원한 존재로서 우리 곁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으로 향한다함은 사랑하며 완전하고 완성된 사랑으로의 갈망이며 항상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지 신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고민하고 슬퍼하고 아파하며 정신적 고통의 원인도 종국에는 사랑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면, 신(=사랑)이 전제가 되지 않은 이웃을 위하고. 누구를 위함은 허구이며 허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사랑으로 신이 되어 있다. 그리고 너무나 사람 앞에 군림屈臨 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랑은 굴림이 아니요. 자기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길이요, 자기 자신의 완성을 위한 원질이요.‘진정한 자기 자신이 사물의 한類로서 확인하기 위해 참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창조한’성스러운 형태이며 형상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이 무엇이며 신으로 나아가는 길이 무엇임을 이제라도 진정으로 느껴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상상력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들을 부정한다면, 그는 이미 자기 자신의 인격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누구든 자기가 신을 안다고 할 때 그 것이 교만이라면 진정, 그는 신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인격적이 된다함은 진정으로 자신을 신에게 맡기는 것이다.
신의 권능 안에 있는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 그러기에 인간은 누구나 신을 볼 수가 있다.」 -하운 잠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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