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김남열의 "사람은 중간자 이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사람은 중간자中間子 이다
하운 김남열
사람은 동물이 될 수가 없다. 또한 신이 될 수도 없다. 동물이 되기에는 너무나 이성적理性的이며 신이 되기에는 너무나 미추美醜 하다. 그것은 사람이 이성적 동물이며 반면, 신 존재란 인간의 이성적인 모습을 초월한 존재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보편적으로 우리는 인문학적 해석과 종교학적인 해석과 자연과학적인 해석으로 나누어서 설명해 왔다.
첫째, 인문과학적인 입장에서 인간은 이성 중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인문과학이라는 학문이 때로는 사람의 생각과 정신을 이것인가, 저것인가. 헷갈리게도 한다. 하지만 인문과학은 인간이란 존재는 만물을 지배하며 움직여가는 영장令狀류이며 어떠한 다른 사물들과 구별되어져 본질적으로 이성적인 내성의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성에 의해서 인간은 서로를 사랑하며 미워할 줄 알고, 지성적이며 아름다움을 꾸밀 줄 알고, 옳고 그름의 정의定意를 내릴 줄 알며, 덕성으로 德性아래의 사람과 윗사람을 진심으로 공경하며 아끼고, 모든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조화롭게 조율하며 만들어 나가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가‘이성에 의한 힘’이라고 본다.
둘째, 종교학적 해석이다.
그것은 인간은 태초에 신에 의하여 신의 형상으로 빗어진 피조물이며 신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이기에 신의 섭리에 의해서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성스러운 가치와 존엄성을 지닌 존재이므로 인간은 인간 서로를 이기적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사용해서는 않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인 그 자체가 목적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신의 섭리에 역행 않으며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선하고 참된 가치는‘신의 섭리’대로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자연과학자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메스란 칼날로 누구나 할 것 없이 마음 속에 생각의 칼날 하나 다 가지고 있다고 보지만, 실질적인 것은 인간 역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인간도 다른 여타한 생물과 마찬가지로 그 생명을 종속시키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속에 공을 들이며 생물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종국에는 자연으로 회귀해 가는 형태 모든 것들이‘자연의 법칙’의한 것이며 다른 유기체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삼라만상參羅萬像의 모든 유기적 물체처럼 자연과학적인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법칙에 의존하며 종속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분명 부모父母라는 모태의 생물학적 태두리인 몸에서 태어나서, 성장과정을 거치며, 사회와 더불어 살다가 혹은 절망과 실의에 빠져 종교적인 하나님도 찾아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웅대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자연의 품속으로 돌아가면서 살아있는 동안은 인위적인 힘으로 자연을 부리며 응용하며 산다.
인간은 질적이며 양적으로 성장한 본능적으로 욕구를 채워가며 동물과 같은 속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 본연의 내성인 이성은 또한 인간적이며 선하게도 만든다. 이러한 것이 인간이 동물이 될 수 없는 요인이 된다. 또 한편으로는 그 이성은 외로움과 슬픔과 아픔과 고독 속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그때 ‘오! 신이여’하며 절대자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신이 될 수도 없으면서 신의 옆으로 가고자하는 몸부림이다. 그렇다고 그는 신이 될 수도 없고, 한없이 나락의 길을 걷는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가지‘중간자’로 머물다 가는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고 그렇게 태어났는지 모른다.
아니면, 애초에 인간은‘완전한 인격’으로서 신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에덴동산에‘완전한 인격’으로서 신이었던 인간이‘불복종’이후 신성神聖이이 사라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물과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사람이 동물이 되지는 못했고, 광신狂信으로 신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신神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직시直視하지 않을 수 없으며 다시 한번 잠언의 묵상을 통해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되새겨 보이야 하겠다.
“신만 찾다가 일하지 않으면 굶어죽으리.
오늘 해야 할 일이 없지만 신에게 기도할 시간은 있다함은 게으른 자의 소치이다.
동물적 근성이 가득하든 너무나 이성적이든 이 둘의 사람은 신을 볼 수가 없다.
내가 동물적이 되려할 땐 내가 동물이 아님을 자각하라, 그래서
내가 너무 이성적이 되려 할 때 나의 오만이 신이 아님을 자각하라”
- 하운의 잠언 -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시인 김남열의 네컷만화 ''존중''
유튜브 / 시인 김남열
평론가 김남열 "살아 있는 생명 자연은 곧 나이다"
살아 있는 생명 자연은 곧 나이다 하운 김남열 살면서 인간이 자연 앞에서면 숙연해 지는 것은 인간 자체도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궁극에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품이다.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재앙도, 자연을 아름답게 보존되는 것도 인간인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면 인간에게 재앙을 안겨다주며, 자연을 보호하고 아끼면 지상낙원의地上樂園의 행복을 보존하게 한다. 또한,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연 속에서 자연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은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인식이 곧 지상낙원의 행복을 보존하는 것이며, 자연을 무분별하게 사용할 때 천재지변의 재앙은 닥쳐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이란 존재는 애초에 서로 도우면 살아야한다는 본질의 미덕을 안고 이 지상에 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절묘한 조합 그것은 집을 받쳐주는 건물의 중심 기둥과 같다. 서로 받쳐주지 않으면 집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과 같다. 단지 인간이란 존재가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더 오래살고 더한 행복을 누리며 호사豪奢 하고자 하는 집착과 탐욕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소중하다. 그러기에 대 자연도 살아 숨 쉬는 인간의 호흡처럼 생명이다. 그 생명은 어느 하나 없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간인들 예외일 수가 없다. 살면서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살아 있는 생명인 자연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의 고뇌를 알면서 살아야 한다. 자연인 인간이 자연만으로 그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그 진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 자연이 현시하는 깊이의 실재를 알 때 인간은 참자연인으로서 우뚝 서게 된다. 한 자연인인 인간인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써의 아름다움이 아니고 자연의 장엄함을 이해함으로써 아름다움이다. 우주의 섭리를 이해함으로서의 아름다움이다. 고로 자연 가운데서 현시하는 깊이의 실재를 읽지 못하는 자에게는 타자의 자연도 산 것이 아니요...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