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김남열의 "삼차원에 머물다 떠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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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차원에 머물다 떠나는 인간
하운 김남열
인간은 변화되어 가는 존재이지만 우주에서 유영遊泳하는 살아서는 시간적 유형有形의 한 점이며 죽어서는 공간적 무형無形의 한 점으로 돌아간다. 그는 과거에도 존재 했고, 현재에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했고, 죽어서도 존재할 그러한 현재의 시간적 차원과 현재의 시간적 차원을 초월해서 있어온 존재이다. 단지 인간은 소멸 되어 질뿐이다. 그리고 시간적 개념 속에서 인간은 현재라는 과거의 미래였을 시기에 존재하며, 현제는 미래의 과거였을 그 시기에 존재하며, 시기라는 시간적 차원의 세계에서 머물다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난 현재를 시간적 삼차원의 세계라고 보고 그 이상의 정신세계를 공간적 사차원 오차원의 세계라고 여기며, 인간은 살아선 시간적 삼차원의 세계에서 유형의 한 점으로 죽어서는 공간적 사차원 오차원의 세계에서 무형의 한 점으로 우주에 유영하는 그런 존재로 표현해 보고 싶다.
먼저 차원을 말하기 위해서는 차원의 정의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겠다.
흔히, 많은 학문에서 정신적 요소와 기술적 요소를 많이 얘기하고 있지만 우선 사전적인 정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합리적인 사고라고 본다.
차원次元을 사전적으로 해석되어지는 뜻은 주로 기본적 의미, 수학적 의미, 물리학적의미의 3가지 측면으로 말해지지만 난 정신적 의미를 하나 가미하고 싶다.
첫째, 기본적 의미로는 사물을 바라보면서 사고하는 입장. 또는 이것을 뒷받침하는 사상이나 학문의 수준이다.
둘째, 수학적 의미로는 기하학적 도형이나 물체 및 공간 안의 점을 인정하는 데 필요한 독립 좌표를 나타내는 수. 직선은 일차원, 평면은 이차원, 입체적 공간은 삼차원이다.
셋째, 물리학적 의미는 물리량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 또는 그 기본 단위와의 관계이다.
넷째, 현실에서 인위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그 무엇이다. 라는 것이다.(가미한 생각)
흔히 우리는 수학적 의미로써 차원이 회자되어 왔지만, 현재는 심리적 종교적 관점에서도 차원이 시사視事 되고 있다. 특히, 요즘 사사로운 일이나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행동하고 판단한다는 것을 말한다는 의미의 대승적차원 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헌데, 말보다 행동이 앞서지 않은 사회에서는 허구적 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학적이며 현실적인 이해를 통한 객관적 접근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정신적 세계의 대한 차원을 이해하는 영양 있는 사고思考라 본다.
먼저 차원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수학적 의미로서의 일반적인 접근을 해본다.
차원이란, 공간 내의 임의의 점을 설정하는 데 필요한 독립좌표의 수다.
말하자면 수직선에 점을 임의로 하나 찍는다. 그리고 그 점의 위치를 a라고 말한다. 그리고 좌표평면에 점을 임의로 찍는다. 그리고 그것을 (a, b)라 하고 다음으로 공간에 점을 찍어본다. 그리고 그것을 (a, b, c)과 같은 방법으로 나타낼 수 있다. 즉, 어느 곳에 위치한 점의 위치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좌표. 여기서는 독립좌표의 수를 '차원'이라고 일컫는다.
그렇게 표현할 때 수직선과 같은 선은 일차원이다. 그것은 공간 내의 점을 지정하는데 필요한 독립좌표의 수가 한 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평면은 2차원, 공간(입체)은 3차원 이라고 한다.
먼저 차원을 말함에 있어서 등장하는 인물은 단연히 유클리드이다. 그것은 현대의정신적 철학의 뿌리도 수학이라는 학문에 출발했다는 점도 고려해 본다.
유클리드(기원전 325년 경~기원전 265년 경)는 고대 그리스 또는 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이다. 영어식으로는 유클리드(영어: Euclid)라고 표기한다.)는‘차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길이·폭·깊이라는 사물의 성질에 수학적 의미를 부여한 사람이다. 유클리드는 그의 기하학에서 직선은 전형적인 일차원적 사물로 정의되는데, 이는 직선이 길이라는 단 하나의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길이와 폭이라는 성질을 갖고 있는 평면은 이차원적 사물의 전형이며, 길이·폭·깊이를 모두 갖고 있는 입체는 삼차원적 사물의 전형이다.
이렇게 유클리드 시대의 수학은 삼차원 세계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수학적으로 정의 하였으며 후에는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삼분법적인 개념에서도 발견 할 수가 있다.
수평적 사고, 넓은 마음의 사고, 깊이 있는 사고가 그러하다.
그리고 이후세대를 거치면서도 이 세계(현재) 또한 삼차원으로 인식되며 다른 차원인 사차원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수학적으로는 터무니없다고 무시되었다.
근대에 들어서 프랑스의 수학자 데카르트는 유클리드와 다른 방식으로 기하학에 접근 했으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분위기가 팽배한 시대 인만큼, 다른 차원을 잘 못 말하다가는 화형대의 바비큐가 될 수 있는 그러한 상황의 위험한 시대 인만큼 다른 차원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차원을 시도했으나 포기하고, 눈으로 보여 줄 수 없는 것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당시 수학자들의 강한 고집들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다양해진 현대에 와서 이제 삼차원을 벗어난 세계가 공공연하게 말하여지고 있다. 그것은 현재에서 실질적으로 인간의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 눈을 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차원의 개념이 인정을 받은 것은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리만에 이르러서이다. 그는 데카르트의 좌표에 대한 정의를 활용하여 0차원에서 무한대의 차원까지 기술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였다. 그에 따르면, 감지할 수 있는 공간에서만 수학적 차원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단지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개념적 공간을 언급할 수 있으면 족한데, 그는 이를 다양체(manifold)라는 개념 속에 포괄하였다. 다양체는 그것을 결정하는 요인의 개수만큼의 차원을 갖게 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어떤 대상이나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무한 차원에 가까운 다양체라고 할 수 있다.
차원에 대한 정의를 자유롭게 만든 리만 덕택에, 아인슈타인(유대계 독일-스위스-미국인으로서의 이론 물리학자)은 이 우주가 사차원의 다양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공간을 이루는 세 개의 차원에 시간이라는 한 개의 차원을 더하면 우주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직도 시간적 삼차원의 세계에 머물러 살고 공간적 또 다른 세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의 생각을 키우며 수신을 통한 훈련(일차원) 그리고 그것을 집필이나, 연설 책등을 통하여 전달하면서의 즐거움(이차원), 그리고 그것이 순환되어 나에게로 돌아 올 때의 즐거움(삼차원) 이것이 모두다란 차원.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나였고 현재의 나이며 미래의 나 인 것을 초월한 또 다른 나를 생각해 볼 때이다.
‘나를 내려놓는 것으로부터의 출발점’이것이 다른 차원의 나를 보는 시작점 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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