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하운 김남열의 "인간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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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
하운 김남열
마음과 가슴이 만드는 얼굴
사람은 다양한 얼굴을 지닌다.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얼굴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아름답게 만 보이려는 얼굴이 아니었나, 혹은 그렇지 못한 얼굴에 대해서 비관하지는 않았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제 2의 얼굴인 본질적인 형태를 띈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으로 느껴지는 얼굴이며, 그로인해 외형적 얼굴에서 기운氣運을 느끼게 한다. 탁한 기운의 얼굴, 그렇지 않은 모습의 얼굴, 이러한 모습은 인간 내면의 마음과 가슴에 의한 움직임에 의해서 보여지는 선한 얼굴, 악한 얼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얼굴, 선하기도 악하기도 한 얼굴의 형태를 말한다, 또한 이러한 얼굴을 보이게 하는 것은‘마음과 가슴’의 향방을 결정하는 사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고는 수평적 사고, 수직적 사고, 수평적이면서 수직적인 사고, 본질적 사고 사고이다. 이러한 사고는 보편적이며 합리적 타당성의 논리의 힘을 지니고 있다.
불구적 보편성不具的 普遍性의 위험
보편적 사고의 원인이 되는 보편성은 누구나의 공감을 가져야 한다. 개별적인 공감을 가지고서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그것은 억지적 주장이며, 보편성을 가장한‘편견’이다.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실천에 의한‘산 경험’이 있어야 한다. 경험주의는 그로 인해 발생하지만, 경험으로만 국한 되어버리면, 이론적 갑옷만 입고 무장만 한 행동하지 않는 경험이 된다. 경험하면 실질적으로 움직여야 하며 그 경험은 다수의 사람들이 인식 할 수 있도록 정당성, 합리성, 타당성의 이론적인 준거의 틀이 필요하다. 이 때 경험에 입각한 이론과 실천의 조합에 의한 행동은 진정한 힘을 가지게 되고 모두의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기에 그 보편적 생각은 이론과 실천의 합목적적인 생각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생각이다. 그러나 문화적, 자본주의적 개인주의는 이론이 앞서거나 실천이 앞서거나 하는‘불구적인 보편성’을 만들어 대중을 미혹하며 대중 앞에 뻔뻔스럽게 부끄러움 없이 서고 있다.
그러한‘불구적 보편성不具的 普遍性’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하여 사람들을‘불구’로 만들고 있다. 대중집회, 대중 선전, 선거운동, 문화광고 등에서 우리는‘매의 눈’으로 본다면 직시할 수 있는 현상이다.
불처럼 확 타오르다가 불꽃이 되어 사라질 때의 허무처럼, 사상누각砂上樓閣(모래위에 세우는 각루)의 과오를 계속 범하게 만든다. 그리고 대중은‘중병’에 걸리며, 큰 대형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건 사고가 나에게는 일어나지‘않겠지’하며 달구경하듯이 해버린다. 이것이 중병이다. 어느새‘불구의 보편성’이라는 칼날로 초토화시키는‘바이러스’보다 더한 병인‘불감’이라는 중병을 유포시키는 범죄의 현장이다.
이같이‘불구의 보편성’이라는 사고가 발생시킨 사건 사고 현장은 너무나 많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연평해전, 기름유출에 의한 사고 등이 이러한 사례이다.
머리 검은 짐승의 말은 본질적 진실이 없다
우리는 흔히“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머리 검은 짐승은 인간이다. 얼마나 인간이란 존재가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의를 저버리며,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하면 이러한 말들이‘보편적(널리 알려져 사람들에게 인지되는 것)’으로 나도는 말이 되었을가? 인간의 진실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을 선한 얼굴, 악한 얼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얼굴, 선하기도 악하기도 한 얼굴의 형태의 ‘보임’속에 말해지는 모습과 수평적 사고, 수직적 사고, 수평적이면서 수직적인 사고, 본질적 사고 사고의‘보이지 않음’속에서 말해지는 모습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가 있다.
무아無我의 얼굴
인간에게 비추어지는 모습이나 사유하는 생각이나 모두‘부조리성’을 안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얼굴이 어떠한 모습으로 비추어지거나 어떠한 생각을 하더라도‘부조리성’을 안고 있기에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부조리 하다고 본다. 그 부조리는 인간내면의‘인간성의 상실’이며‘본질성의 상실’이다.
인간의 본질적 바다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 정신의 뿌리인 본질성이 사라졌기에 인간이 어떠한 얼굴을 하더라도‘예’하거나 ‘아니오’할 수밖에 없다. 즉, 아름다우면, 아름답지 않다고 해야 하고, 아름답지 않으면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보이는 진실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부조리에 대한 지적이다. 그리고 본질성에 회칠 되어져 있는‘이기의 오염’이 정화되지 않는 이상, 인간이 부르짖는 말과 소리는‘허구’일 수밖에 없다. 아니면 옆집‘개 짖는 소리’가 진실한 것일 수가 있다. 욕심 많은 부자의 집 ‘고방’의 문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위해 쉽게 열리지 않는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기라는 오염물로 채워져 있는 본질성은 개끗하게 정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깨어지고, 무너지고, 깨달음의 문턱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희망은 없는 것이 아니다.
‘비우는 연습’‘깨어지더라도 남을 탓하지 않고 일어서는 연습’‘자신을 채우기 보다 타인의 허한 가슴을 채워주려는 연습’이런 모습이 일말의 희망을 준다.
그리고 마참내‘무아의 얼굴’원래의 인간의 모습인‘원 본질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부조리 하며 진실성이 결여 되어 있다.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행동하고 자기가 이해하는 만큼 타인을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보편성이란 보편적 성질을 지닌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언제나 항상(과거, 현재, 미래) 해당되는 어떤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편성을 애기 할 땐‘불구적 보편성’속에서 헤매며 우리가 그 불구적 보편성을 ‘보편주의’로 이념화 하려 하지 않았나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불구적 보편성’이 존재하고 난무하는 시대는 언제나 어수선하고, 돈키호테처럼, 삐에로처럼 사람들의 미친 짓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비록 그 사회가 민주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얼굴과 사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은 변장한 다양한 얼굴의 한 부분일 뿐이며, 인간 부조리는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우리 개개인의 몸속에서 우리 몸을 오염시킨 채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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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생명 자연은 곧 나이다 하운 김남열 살면서 인간이 자연 앞에서면 숙연해 지는 것은 인간 자체도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궁극에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품이다.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재앙도, 자연을 아름답게 보존되는 것도 인간인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면 인간에게 재앙을 안겨다주며, 자연을 보호하고 아끼면 지상낙원의地上樂園의 행복을 보존하게 한다. 또한,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연 속에서 자연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은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인식이 곧 지상낙원의 행복을 보존하는 것이며, 자연을 무분별하게 사용할 때 천재지변의 재앙은 닥쳐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이란 존재는 애초에 서로 도우면 살아야한다는 본질의 미덕을 안고 이 지상에 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절묘한 조합 그것은 집을 받쳐주는 건물의 중심 기둥과 같다. 서로 받쳐주지 않으면 집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과 같다. 단지 인간이란 존재가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더 오래살고 더한 행복을 누리며 호사豪奢 하고자 하는 집착과 탐욕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소중하다. 그러기에 대 자연도 살아 숨 쉬는 인간의 호흡처럼 생명이다. 그 생명은 어느 하나 없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간인들 예외일 수가 없다. 살면서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살아 있는 생명인 자연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의 고뇌를 알면서 살아야 한다. 자연인 인간이 자연만으로 그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그 진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 자연이 현시하는 깊이의 실재를 알 때 인간은 참자연인으로서 우뚝 서게 된다. 한 자연인인 인간인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써의 아름다움이 아니고 자연의 장엄함을 이해함으로써 아름다움이다. 우주의 섭리를 이해함으로서의 아름다움이다. 고로 자연 가운데서 현시하는 깊이의 실재를 읽지 못하는 자에게는 타자의 자연도 산 것이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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