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운 김남열의 "이성과 신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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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신앙에 대하여
하운 김남열
이성과 신앙의 공존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성은 어떠한 대상에 대한 판단을 통하여‘누구누구에게로’수용되기를 원하고, 신앙은 어떠한 대상에 대한 판단을 통하여 소망과 믿음에 의하여 포용하기를 원한다.
이성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이 생명이 있는 것이든, 생명이 없는 것이든 구별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반면, 신앙은 사유하는 사람의 주체에 따라서 바라다보는 대상에 대한 차이의 정도를 인정하며, 믿음과 소망으로 모두를 안으려 한다. 허나, 사람들의 이성은 주관성과 객관성을 안고 있으면서‘차별’의 판단을 원하며, 사람의 신앙은 주관성과 객관성을 품고 있으면서‘차이’의 판단을 원한다. 그런 까닭에 전자는 자신이든 타인이든 그 양자 속 어떤 곳이든지 스며들기를 원하며, 후자는 자신이든 타인이든 그 양자 모두에게 흡수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성과 신앙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이웃이 되어 공존해 왔다. 그리고 이성은 사람을 극과 극으로 몰아붙이며 삭막하고 살벌하게 판단하려 할 때, 신앙은 사람의 그 살벌함을 무디게 또는 부드럽게 해 왔다. 그러므로 신앙은 이성의 판단에 의한 사람들의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부드럽고 배려하는 모습의 온화함으로 변하게 만들었고, 이성은 신앙이 가지고 있는 광신성의 위험을 견제하며 나아가도록 종려 해 왔다.
주관성과 객관성
주관성主觀性이란 사람 개개인이 개별적인 주체를 가지고서 바라다보는 대상의 사물과 일어나고 있는 사건적 모습을 사유하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며, 객관성客觀性이란 사람 개개인 누구나 할 것 없이 공감대를 가질 수가 있는 정확하고 명석한 가치의 기준적인 준거의 틀을 바탕으로 바라다보는 대상의 사물, 사람들 혹은 사람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실의 사건을 사유하는 가장 일반적이며 보편적으로 바라다보는 시선의 관점을 말한다.
흔히 사람들의 주관성이란 이성적이며 신앙적인 판단력이 근거가 된다고 하지만, 느낌으로 인식되어지는 다분히 감성적인 것으로,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연속성이 없으며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느낌이기에 도발적인 모습은 지속적인 어떠한 진실적인 사물, 사람, 사건에 대한 현상의 사실을 보장할 수가 없다고 본다. 반면 객관성이란 극히 이성적이며 신앙적인 느낌의 감각적인 감수성보다 현실 지향적이며 있다가 없어지는 보였다가 보이지 않고 사라져버리는 현상이 아니라, 계속적이며,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어떤 사물, 사람, 사건의 현장감의 현실적인 현상을 추구한다.
또한 주관성은 환상적이며 추상적일 수도 있다. 반면, 객관성은 사실적이며 현실적이다. 그래서 주관성은 사람들을‘해 깔리게’하고, 객관성은 사람들을 너무‘딱딱하게’하는 허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관성의 환상적이며 추상적인 모습이 가지고 있는 허구를 객관성은 깨트려 버리며, 객관성이 가지고 있는 허구를 주관성은 무너트려 버린다.
그러나 신앙이 이성의 또 다른 얼굴인 것처럼, 주관성 역시 객관성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본다. 합리적 인식의 정도가 결여되어 있는 주관성은 합리적 인식의 객관성을 원하며 그러기에 주관성과 객관성은 공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객관성은 주관성이 인식에 의하여 궁극적인 목표를 추구해 나가는‘합리성’이 결여 되어 있다고 보며, 주관성은 객관성이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나갈 때 경직화되어 있는 모습 속에‘자율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관성은 객관성을 배재할 수 없고, 객관성은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어 서로가 공존할 때 각자의 관점으로 내재하고 있는 주관성과 객관성의 사고도 힘을 발휘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성과 신앙의 실제적 에너지
이성이란 형태와 신앙이란 모양새의 형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둘의 내면에는 주관성과 객관성이 함께 추진력의 힘의 내성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도 주관성과 객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신앙도 주관성과 객관성을 지니고 있다. 주관성과 객관성의‘판단지’는‘이것도 저것도’의 사고 구조이다.
‘이것도 저것도’의 사고 구조 속에서 이성은‘차별성’을 지니며, 신앙은 ‘차이성’을 추구하고 인정하면서 차이에 보이는 둘을 수용한다. 차별성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 중의 하나인 선택을 원하고, 차이성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둘 다를 포용한다.
이성과 신앙의 충돌은
사회의 병리 현상을 발생하게 하는 것은 다양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이성적 관념과 신앙적 관념적 이론적 충돌에 의한 이성적이며 신앙적인 행동에 의하여 발생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사람은‘이성적 동물이며, 신앙적 동물이다’라고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성적이기에 만물의 영장이면서 최고가 되기를 원하는 까닭에 성장하는 과정속에서 적자생존의 가치를 반영하려 하며 그 가운데 부정적이며, 비리적인 사회적 병리 현상도 발생한다. 또한, 사람은 신앙적이기에 절망과 아픔 속에서 신을 찾으며, 신은 없다고 여길 때 인간의 무능함을 자책하며, 오히려 자신 스스로가 믿음을 거부하며 신적 존재가 되려하고, 스스로가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되려하면서 이러한 가운데 사회적 병리현상을 발생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적, 신앙적 사구 구조가 사람들이 생활하고 그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들에 다 적용이 되고 있다. 너무나 이성적 사고에 의한 행동은 극단주의적인 영향을 주며, 사회를 황폐하고 차갑게 만들며, 너무나 신앙적인 모습은 광신적이며, 어떨 때는 사람을 미치게 까지 한다. 너무나 차가운 모습의 사고나, 너무나 뜨거운 모습의 사고는 사회 발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람이 마시는 물이 너무나 뜨거운 것이나 너무나 차가운 것이 몸에 흡수가 어려우면 해로움을 줄 수도 있기에‘중수’를 만들어 마시는 것처럼, 사회라는 분위기도‘조화’를 지니고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이성과 신앙이 상호 충돌하지 않고, 상보적 정-반-합(조화)의 관계성 속에서 나아갈 때 가능한 것이며, 우선 나 자신의 사고가 이성과 신앙적 그리고 그 속에 내재한 주관성과 객관성의 사유 속에서 너무나 극단적이며, 너무나 광신적이지 않나 한번 되새겨봄도 개인과 가족과 사회를 위한 발전적인 한 걸음이 아닌가 생각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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